Before I got quitting high school

6. the struggle for international lawsuit, applying for refugee, and trials in S. Korea


그래도 내가 여기에 이름을 나열한 이유는 이 불법적인 상황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 위함이다. 내가 이렇게 처절한 노력을 하면서 사는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을 보아왔다. 아마도 내가 그동안 겪은 사람들 중에도 있으리라고 예상되지만,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만약 내게 가한 자신들의 행동이 너무 미안해서 자살할 정도라면, 그렇게 사과 한마디 없이 그냥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 동안에 나는 유전자 검사를 한국에서 3회(휴먼패스 법원제출용), 해외에서 2회(NIMBL diagnostics, Genex diagnostics) 하여 모두 동일한 결과를 받았다. 친모인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청구를 위해 FEDEX로 서신을 발송한 적이 있는데, 배달사고인지, 그 기관의 고위직원중 한 명이 ‘송상현’이라는 한국사람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국제사회의 방관인지 아무 응답도 받지 못했다. 아무 응답도 받지 못하기에는 내가 너무 많은 명백히 불법인 일을 오랫동안 당해왔고, 그것은 너무나 생생해서 나로서는 기억의 오류나 망상이라고 치부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나에 대한 지속적이고 집요한 관심이 왜 점점 더 심해지는지 매우 궁금하다. 분명히 밝히는데, 아무리 관심폭발이라도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지금 이대로 이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그런 관심을 끄든지, 상황설명을 제대로 하고 원하는 것을 말하든지 할 수밖에 없다. 계속 내가 한국국적으로서 한국법의 테두리밖에 내동댕이쳐진 매우 열악한 상황인 것을 빌미로 헐값으로 이득을 얻고자 하는 꼬락서니에 나는 화가 나는 게 당연하고, 내가 개인적으로 쉬는 공간에서 하게 되는 비난의 말에 그 누군가는 계속 열받아 반 미치광이처럼 되는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내가 개인적인 분노폭발로 하는 비난은 그 누군가만이 듣는 게 아니므로 본인은 공개적인 비난이라고 착각할 지 모르지만, 전혀 아니다. 당신 혼자만 정신나간 것이다. 몰래 엿들은 말로 공개적으로 미치는 중이다. 나는 해외에서 비롯된 나를 타겟으로하는 불법행위들의 유력한 용의자로 일루미나티를 꼽고 있다. 확신하려면 증거가 필요하고 그래서 이 글을 써서 배포하는 것이다. 일루미나티는 내 말을 잘 새겨 마음속으로 음미해봐야 한다. 최고 상층 한두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원들은 가까운 미래에 나와 별반 다를바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편안한 생활을 위해 뭔가를 포기하든가,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일루미나티와 결별하든가 선택해야만 하는 평범한 인간이다. 최고 상층의 한 두명의 운명은 아마도 이미 정해져 있고, 그것은 성경에 나와있다. 지금은 일루미나티에 속해 있어 우아하고 선택받은 세련된 느낌의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착각이다. 일루미나티는 냉소적이다고 할 만큼 지적이고 싶고, 남들의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고, 부유함이 넘쳐 너그럽고 천사처럼 선량하고 정의로우며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파워를 가지고도 이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은, 알량한 심리를 가진 사람들을 기만하는 단체이다. 조물주가 만들어낸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어, 누구나 스스로 판단해서 자신의 운명을 창조해나가야 하고, 그런 일련의 생활은 아무에게도 위탁하면 안된다. 요즘에는 편리함, 부유함, 인공지능비서 등등에 우리의 많은 것을 위탁하라는 광고가 넘치고 있지만, 사람이라면 살아가는데 당연한 불편함이 있고, 모자람도 있으며, 모르는 부분도 많아서 타인과 함께 보충하면서 또는 스스로 만족하면서 느끼는 삶의 환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데 다 위탁해놓고 부족함이 전혀 없는 삶에서 무엇을 느끼며 살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이렇게 열악한 법적 상황에 있기 때문에, 나는 돈이 더 필요하다. 소송도 해야하고 증거자료도 모아야 하고 불법행위 때문에 돈이 줄줄 새나가기도 한다. 무기 판매 대금결제를 현지에 직접 가서 받지 않기로 해서, 구매자측에서 대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는 영국, 말레이지아, 베넹, 벨기에, 네덜란드 등으로 출장을 다녀야했다. 처음에는 영국에서 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대학때 배낭여행으로 다녀온 후 오랜만에 간 거였다. 내가 거기서 누굴 처음으로 만났다고 주장하는 곳에도 잠시 들렀다. 남들이 다 지켜보는 걸 알아도 눈물이 줄줄 흐르지만, 계속 울고만 있을 수도 없어 또 다 잊은 듯이 돌아다니게 되었다. 영국사람들은 내가 기억을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자꾸 일깨워 주고 싶어 했다. 내가 그럴리가 있겠는가. 하여튼 대금결제는 실패했다. 그쪽 무역대금 결제방식이 약간 비상식적인 건지, 아니면 현지에서 받는 걸 거부해서 그렇게 된건지 모르겠는데, 그 사람들은 결제대금을 받기 전에 얼마를 지불하라고 요청한다. 무역사기사건의 전형인 것 같지만, 이런 행태는 그쪽 지방 특유의 문화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전적으로 무역사기라고 하기에는 좀 석연치 않은데가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지아에도 갔었다. 전달자인 흑인은 영락없는 사기꾼이었다. 무역협회싸이트에서도 유명한 수법으로 날 등쳐먹는 걸 다 지켜봤다. 내가 묵었던 호텔에 대해 말인데 아무리 특급호텔은 아니라도, 문이 두 개인 객실에 한쪽 문은 자물쇠가 달려 제기능을 하는데 다른 쪽 문은 자유롭게 열리는 거였다. 누가 보면, 문단속도 안하고 허술하게 다닌다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그걸 내가 안전하다는 신호로서 인식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지금 그곳에 와 있는 것인지 완전히 이해한다라고 내게 알려주는 것처럼 나는 느꼈다. 한국에서처럼 나는 어딜가나 다 공개되어 살고 있지만, 한국에서라면 나는 그렇게 인식할 수 없다. 베넹에도 갔다. 만나봐야 할 사람이 두, 세 사람이나 되었고,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는 겁이 나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이름도 생소한 무기구매자의 바로 옆에 위치한 나라다. 한국에서 직항편도 없어서 프랑스로 먼저 가야했다. 일정이 좀 여유가 있어서 루브르 미술관에 가서, 돌담 위에 앉아 쉬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이번에는 블랙이냐?’고 하면서 지나갔다. 불어로 말했으면 못 알아들었을 거고 한국말로 한 것도 아니니 영어로 말했나 보다. 하여간 그런 의미로 그런 말을 들을 사람이 거기에 나밖에 없으니, 나한테 한 말인 거고, 한국에서는 한국말로도 나한테 그런 말을 감히 하는 사람이 없는데, 뭔가 숨기려는 태도는 전혀 없이 사실대로 말하려고 하는 그런 분위기에 홀딱 반하는 중이었다. 프랑스에 도착해서야 황열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개인병원을 거쳐 약국에 물어 물어 접종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갔다. 접종 후 확인서를 교부해 줄 때, 병원 직원들이 내 생년월일을 잘 못 적어넣었는데, 고의가 아닌 것 같았다. 거의 일년정도 지나서야 생각이 나서 그 접종증명서를 찾아봤는데, 도난당했다. 길에서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한게 아니라, 집에 보관해놓은 걸 누가 가져간 것이다. 그 잘못 적힌 생년월일위에 내가 정정해준 대로 고쳐썼으니 내가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없어진 것이다. 거기에 실수인 척 적어넣었던 게 내 실제 생년월일인 것 같다. 발생 당시에 바로 바로 눈치채는 게 힘들다. 한 번 겪어보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내가 아무리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빨라도 모든 정보가 동시에 실시간으로 처리되는 컴퓨터는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얼마전에 프랑스에 난민신청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었다. 베넹에서는 한 눈에 딱 봐도 사기꾼처럼 보이는 한 명을 만났고, 진짜로 진지해 보이는 대금결제당사자의 변호사도 만났다. 사실 이번에는 그 결제건으로 방문한 건 아니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다시 프랑스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와야했다. 나로서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행은 매번 힘빠지는 매우 불쾌한 여행이다. 벨기에에도 돈 받으러 가서 한 흑인을 만나, 어찌 저찌 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는 벨기에에서 분위기가 엄청나게 쌀쌀맞다고 느꼈다. 네덜란드에도 가야 했었다. 그런데 여행할 돈이 없어서 끌어들인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대금결제가 성공하면 살인계획도 세워놓았던 것 같다. 내가 대금이 보관되어 있다는 창고를 구경하고 온 적이 있는데 그곳이 벨기에인지 네덜란드 인지 잘 모르겠다. 구경을 시켜주는 그 흑인은 내가 그 장소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보여주면서 본인은 이코노미스트라고 했다. 이제는 결제대금이 어디에 보관되어있는지 모두다 확인했고, 나에게 주기만 하면 된다. 세금 약 45% 떼고 돌려줄 것 같이 나는 이해했는데, 은행에 넣어 놓았으면 이자도 상당할 거고, 내가 이런 상황을 정리하고 한국을 떠나 이미 독일에 가 있을텐데. 이런 저런 시도 끝에, 나는 프랑스에 난민신청을 하기로 했고, 한국이 넌덜머리가 난 나는 비행기표도 없이 공항으로 갔다. 한국인 직원에게 비행기표를 문의해보니 날짜가 맞지 않아 독일행을 문의해 봤더니 삼백만원이라고 했다. 하루 공항에서 보내기로 하고 일본경유, 스위스경유 프랑스행 비행기표를 겨우 샀다. 그야말로 지옥 같은 공항에서의 하루였다. 낮에는 한 남자애랑 크게 다퉜는데, 꼭 정치인 남경필 아들처럼 생겼다. 저녁에는 또 다른 남자애 때문에 잠도 자기 힘들어 꼬박 밤을 새웠다. 어느 집 자식인지 버르장머리도 없고 밝히기는 왜 그렇게 밝히는지. 일본에 도착해서도 하룻밤을 보내야 했는데, 나에 대한 공항분위기가 가관이었다. 일본항공으로 스위스로 향하는 기내에서는 일본인 승무원의 특별히 준비한 허접서비스를 받으며, 스위스에 도착, 비행기를 갈아타려는데 참 희한하게도 입국심사 비슷하게 이것저것 묻는 것이다. 특히 현금이 없이 간 나에게 꼬치꼬치 묻길래 사실은 난민신청하러 프랑스에 가는 중인데, 스위스에서도 가능하다면 여기서 신청할 수도 있다고 했더니, 아마도 본인들이 난민신청을 받으려고 했나보다. 난민 신청을 회피하는 분위기가 아니고 열렬히 받고 싶어하는 열망을 억지로 숨기며 우기면서 접수하는 우스꽝스럽지만 어떤 이득이 있을까 희망에 찬, 기대에 부푼, 야심찬 접수 같았다. 스위스에서 1달간 공항에서 갇혀 지내면서 많은 모욕적이고, 부당하고, 억지스러운 일들을 겪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런 꼴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라니, 그야말로 지상에 실현된 지옥이었다. 너무나 오만한 사람들틈에서 한달동안 고생하다가 난민신청이 거부되어 추방되었다. 그 사람들 주장은 Schengen을 대표해서 추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2022년까지 그 지역에 난민신청은 할 수 없다고 했다. 한 달이나 심사한다고 잡아놓고, 추방이유는 어이없는 것이었다. 내가 취리히 공항을 떠날 때 난쟁이 직원이 내게 트위터를 하겠냐고 선심쓰듯 물어보았다. 정말 배부르고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공항에서는 내가 다 들리도록 ‘우리는 무책임한 한국과 달리 pay한다’ 라고 큰소리치는 소리도 들렸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아직 미안해하는 낌새도 없다. 그런 짓을 하고도 어떻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내 말은 TV나 신문에서 연일 난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한창 이슈가 되는 문제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유엔난민기구, 법무법인 등에 전화도 해보고, 여러가지로 알아봤지만 소송걸 여건이 안돼었다. 모두들 횡설수설하며 거절하고 외면했다. 애초에 한국에서는 법의 테두리밖에 존재하는 사람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국가적인 자존심도 없는 사람들인가 보다. 스위스에서 돌아온지 1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사과 한마디는 커녕 제대로 된 위로 한마디 들어보지 못했다. 그 대신, 국제적인 이런 저런 불행한 사건들을 들어 내 마음이 풀리기를 바라나 보다. 오늘은 미얀마의 로힝야족의 비극에 대해 크게 보도하면서, 휴머니티에 대한 논평이 가해졌다. 아웅산 수치여사의 positive한 이미지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의 이런 저런 이야기인데, 수치여사의 positive한 이미지와는 별도로 실제로 현장에서 고생한 사람은 수치여사뿐이지 않은가. 그런 이미지를 주면서 생색내고 립서비스하며 사치를 부리는 사람들이 지금 휴머니티가 어쩌고 하면서 비난하고 하녀라도 부리듯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고 말할 자격이 되는가. 자신들이 상 주고 칭찬과 지지를 보낸 것이, 개도국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positive한 역할을 하도록 임명장이라도 준 줄 착각하는 모양이다. 그런 positive한 역할을 통해, ‘휴머니즘이라면 바로 나’라고 생각하는 자신들처럼 선진적이고 민주적이고 우아한 나라로 변모하기를 바라나 보다. 좀 더 따져보자면, 돈이라면 눈이 뒤집힐 것처럼 남의 나라 침공하여 살인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왜 지금 비극적인 인간사에 그토록 마음아프다는 표현을 해가면서도 돈을 위해 행동할 때처럼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지 않은가 매우 괴상하게까지 생각된다. 첫 해외여행지는 미국 San Diego였다. 두번째 미국여행때는 6개월짜리 어학연수였다. New York에서 카드점을 쳤었는데 나에게 지금 그 사람을 꽉 잡으라고 했다. Jeff라는 이름의 남자도 기차에서 마주쳤다. Miami의 서점에서 점원이 ‘너처럼 생긴 사람도 책 사냐?’는 듯한 투였다. Seattle 에서는 캐나다가 가까워서 밴쿠버나 빅토리아로 여행을 다녔었다. 캐나다에서도 나는 홀딱 반할 일을 겪었었다. 세번째 미국행은 New York이었는데, 마침 Pace Univ. 라는 곳에서 입학신청서식을 보냈길래, 내 출생서류도 찾아볼 겸 해서 방문했는데, 약 두달정도 지내면서 온통 한국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뭘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거기는 불법주거침입이나 소음으로 자극하는 사생활침해는 불가능했었는지 밖에서 불빛으로 보내는 신호를 확인했다. 다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곧바로 입원하게 되었는데, 대학때와는 달리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대체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 때도 정신과약에 푹 절어 비몽사몽으로 누워있었는데, 한 간호사가 놀라 내게 뛰어와서는 911 terror사건에 대해 알려주었다. 요즘 유튜브에는 911테러가 자작극이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일본 여행, 동남아 배낭여행, 중국 등 여행을 많이 다녔다. 홍콩은 굉장히 비우호적인 느낌이었고, 대만에서는 어느 육교위에서 만난 한 분이 생각난다. 고위 공직자 처럼 보이는 그 분은, 내가 대만에 도착했을 때, 떠날 때 두번이나 같은 장소에서 마주쳤다. 야시장에 도 갔었는데,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끼다니 이게 웬일인가. 필리핀 보라카이에서는 미국인 생선 사업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상냥하고 잘생긴 남자가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여러가지로 불쾌한 일이 많아서 그냥 프랑크푸르트로 훌쩍 떠났었다. 거기서 약 2개월 지내다가 발붙일 데가 없어서, 태국 거쳐서 다시 한국으로. 베트남 호치민시티에서도 고생 많이 했다. 유럽 배낭, 독일 마부르크, 기센, 괴팅엔 등등 많이 돌아다녔다. 내가 한국의 법테두리 밖에 내동댕이쳐져있는 처지가 아니라면 그렇게 많이 해외로 돌아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해외 연구자들은 내가 어떻게 버티는지에 대해 이론을 정립하고 싶은가 보다. low profile 어쩌고 하면서도 못 찾는 이유는 아마도 눈에 잘띄지는 않지만 극명하게 드러나는 동서양의 문화차이인 것 같다. 서양문화가 자신을 적극 홍보하며 돋보여야 성공하는 문화라면, 동양은 그렇지 않다. 내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다지 연관성이 없으니 생략한다. 좀 덧붙히면, 그 사람들이 나한테서 얻고자 하는 것과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기억에 의존하여 매우 간략하게, 그리고 나의 말도 안되는 불법 상황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사건만 거의 날림으로 적었다. 이렇게라도 적어서 책처럼 엮어 배포하는 이유는 공식서류든, 사실확인이든 feedback 을 받아서 증거자료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이 글이 지금은 매우 간략한 메모노트처럼 유료배포 되지만, 재판을 준비하면서 증거와 자료들을 보완하여 version 2로 다시 정리하여 책으로 엮어 자료와 증거를 제공한 분들에게 무료로 보내드릴 것이다. 재판이 끝나서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 내 상황이 정상적이 되면 version 3으로 좀 더 자세한 감상과 사건 경과와 재판에 대해서 정식출판할 예정이다. Version 2를 받으신 분들은 감사와 보고를 겸해 version 3 도 받으시게 된다. 그때는 사진이나 동영상도 출판에 첨부될 지도 모른다. 홈페이지에서는 이 메모노트가 공개되어 계속 보완될 예정이다. 내가 처한 이 불법사황은 내 사생활 뿐만 아니라 공공생활까지도 불법으로 엿보는 누군가에 의해 침해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전혀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사생활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아마도 공권력이 가미된 것이고, 나로서는 증거를 잡아내기가 힘들다. 그 사람들은 나의 사생활과 공공생활 모두를 기록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증거가 5건만 내게 주어져도, 줄줄이 사탕처럼 엮일 것이다. 이게 그냥 한국에서만 꿍꿍이로 끝나는 일이면, 내가 망명이든 이민이든 해외로 나가면 되지만,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 얼토당토 않게 엉뚱한 사람들이 잘난척하며 손해는 다른 사람들이 입고 이득은 또 다른 사람들이 취하는 아주 이상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그야말로 바보천치와 같은 꼴이다. 미숙하고 서툴러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유치원생 같은 대처에 낙동강 오리알이라도 된 듯하다. 그런 처지임에도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그 사람들 외에 아무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불법상황인 것이다. 이 메모노트는 2만원에 배포하려고 한다. 이 메모노트에 관련하여 자료와 증거, 서류 등을 모으려고 하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고 고생스러워도, 천편일률로 무양심에 무개념에 야만스럽기만 한 건 아니다. 어디에선가 눈에 띄지 않게 안타까워하며 가슴 졸이며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이런 꼴을 하고 30년 동안이나 견뎌온 이유이다.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히는데, 나는 내 문제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이 메모노트를 작성했고, 이걸 토대로 양심적이고 바르게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불법행위에 대한 자료와 증거, 서류 등’ 을 얻고자 한다. 그와 관련한 내용으로 어떤 형태, 어떤 내용도 좋다. 그런 것을 제공하는 것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일 수도 있고, 본인이 연루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까 말한 대로 이제는 이렇게 쉬쉬하며 자행되는 불법행위는 누구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으며, 그런 자료와 증거, 서류 등을 제공하는 사람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고, 나는 절대로 당신의 뭔가를 희생하면서 억지로 그런걸 제공해 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나도 정보제공자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지만, 제보자가 진실을 드러내고 몰래 불법행위를 하는 무리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인 도덕적 개체이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분명 나는 당신에게 진실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그렇고 나는 제보된 자료와 증거, 서류 등에 값을 매겨 재판이 끝난 후에 지불하려고 한다. 이건 인센티브가 아니고 감사다. 제보할 연락처는 홈페이지 elishahong.net 이메일 elishahong@naver.com 팩스 031-275-8895 휴대전화로(문자만 수신) 010-8629-8865 2부 : 사건별로 정리 생각나는 대로, essay로서 자료와 증거등이 모아지는 대로 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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