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I got quitting high school

5. back to Korea, travelling abroad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순간에 스토커들은 주제넘게도 무언가를 변호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제야 인간적인 감정이 마구 솟구치기라도 하는 듯, 그러나 아무도 그 뒤에서 변호받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된다. 딱 한 사람만 빼고. 그 사람은 얼마전에 자신의 아들을 이 스토커 무리에 끼워 큰 이득을 본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의 주제넘은 위선은 그만두고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지라고 하고 싶다. 본인의 직위에서 책임질 일이 넘쳐나는 상황이지만, 내가 요구하는 건, 그런 거창한 사회적 책임이 아니다. 대학 졸업학년때 왕따당하느라 정보부족으로 취업정보를 접하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일정이 생긴 LG에 지원했다가 탈락했다. 누군가는 왜 영어보다 독어를 더 열심히 하지 않느냐든가, 영어 하나 먼저 제대로 해라 든가 라면서 참견을 하지만, 사정을 전혀 모르는 주제넘은 참견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영어 공식인증시험을 믿을 수가 없다. 얼마전에 나는 운전면허를 반납해야만 했다. 대학 1학년 때 8번 탈락하고 받은 면허인데, 나는 그때까지 그렇게 많은 탈락을 겪어본 적이 없다. 일반 시험도 잘 치르는 편이지만, 실기시험은 더 잘 치르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뉴욕에 여행갔을 때도 운전면허 시험에 탈락했다. 그 뉴욕의 시험 채점자는 약간 자신감이 없는 듯하지만 나름 예쁘게 멋을 내고 서 있는 내 옆의 한국여자 지원자에게는 너무나 운전면허를 내주고 싶은데 실력이 안되는 것 같았고, 나는 두번 채점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꼴이 아니라서 미워 죽겠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이후에 내 영어실력은 공인점수도 없이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은 채, 내게 굉장히 많은 이점을 주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이 글의 목적과는 약간 방향이 다르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그 후, 아빠가 독립 사업을 하시는데, 도우면서 배우기로 하고, 무역회사를 하나 만들었다. 내가 직접 정관도 만들고 서류 구성해서 무기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사장이 되었다. 취급품목이 무기이다 보니 거래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당시에 유행하던 S/W사업을 하시는 분의 영향으로 서울의 유명한 학원에 등록했으나, 중도포기해야 했다. 수업내용이 벅차다는 것이 내 이유이지만, 학업분위기가 정말 나빴다. 같은 수업을 듣는 학원생들은 대학때나 다름없이 시기심과 경쟁심으로 똘똘 뭉친 것 같았다. 가뜩이나 수업 내용도 벅차다고 느끼고 있는데, 주변학생들은 도움을 주고받을 마음의 여유도 없어 보였고, 서로 돋보이겠다는 의지로 꽉 찬 그야말로 아귀다툼의 현장 같았다. 정말 아쉽지만 포기했다. 또 의대에 다시 도전했었는데 삼육대학교에서 또 탈락했다. 면접에서도 아주 맘에 안들었지만, 정작 탈락 이유에 대해서는 성적이나 면접이 아닌 것 같은 언질을 고대 정신과 의사중 한명에게서 들었다. 만약 이런 부당한 탈락을 당한다면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 내가 이렇게 부당한 상황에 처한 이후, 너무나 많은 노력이 허사가 되었고, 그런 걸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 그걸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인지 한번 보고 싶다. 회사에서 시간이 남아도는 나는 이런 저런 궁리중에 나이지리아로부터의 무기구매건을 접하게 되었고 대금결제받을 일이 생겼다. 나이지리아 발 무역사기가 판을 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거래는 시작이 달랐고, 진행과정에서 믿을 만하다고 느꼈다. 대금결제를 받으러 나이지리아로 오라고 했지만, 아빠의 조언을 듣고, 무기를 공급받고 싶으면 대금결제를 회사 계좌로 당신이 책임지고 해야한다고 우겼다. 그러고 나서부터 일이 꼬여버렸다. 나는 대금결제를 받기 위해 영국, 말레이지아, 베넹, 벨기에, 네덜란드 등을 헤매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아빠가 사망하시고, 내게는 약간 해방감이 왔지만 잠시였다. 내가 알던 한 목사는 내가 표정이 편안해졌다면서 나를 두둔하는 듯 했지만, 이건 완전히 위선이다. 아빠가 살아있을 때는 아빠 편에서 모든 판단을 하던 사람들이, 아빠가 사망하고 나니 모든 비난이 그리로 쏠리는 듯 했다. 그리고 주변에는 여전히 마찰 투성이인데, 특히 가족간의 마찰이 여전했고 엄마는 내가 사업이든 공부든 거의 모든 것을 하지 않기를 바랬다. 엄마는 나를 입원시키는 것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수단인 것처럼 행동했고, 아빠 사망 후에 더욱 심해졌다. 대학졸업후에도 계속 고대 정신과에 입원이 반복되다가, 아빠 사망후, 용인정신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용인정신병원에 처음 입원하기 위해, 우선 구급차를 부르는 데서부터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하나구급’에서 맡아서 나를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여러 곳을 전전했다. 거의 마지막 단계에 용인정신병원에서 입원절차를 하게 되었다. 상담의사는 ‘이용석’ 전문의인데, 아마도 고려대학교 의대출신인 것 같다. 상당히 뚱뚱한 몸으로 걸어다니는 것도 불편해 보이는 그 의사는 틈틈히 비만예방에 관한 강의를 한다고 했다. 또 당시의 병원장도 고대 의대출신이었다. 무슨 사명감에 일하는 사람들처럼 이런 저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들이 오간 후에 6개월간 입원하게 되었다. 그 과정을 이야기하자면 정말로 구질구질해서 입에 담고 싶지가 않다. 엄마는 내 입원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그 동안 병원측에서 주장해온 말 중에서 입원시에 효과를 발휘하는 말들을 모아, 환청이니 자신을 계모라 한다면서 망상이니, 내 말이 수미상관이 안 된다는 둥 하는 말들을 읊어댔고, 담당의는 그 말을 그대로 수용하며 순순히 절차를 밟았다. 그 후 나는 3번 더 입원했고 그 때마다 6개월씩 갇혀있었다. 병원 시설은 고대부속병원보다 훨씬 나아서, 한 방에 6명이 아닌 3명 수용, 하루에 두 번씩 산책시간, 상담을 하는 의사들이 레지던트가 아닌 전문의라는 점 등에서도 탁월하지만, 고대부속병원보다 약 용량을 훨씬 적게 써서 부작용이 훨씬 덜하고 실험대상이 되었다는 느낌도 훨씬 덜 들었으며, 무엇보다도 병원비는 비교도 안되게 저렴했다. 게다가 입원기간이 3개월 이상되는 걸 싫어하는 대학 병원에 비해 평균 입원기간이 길어 안정적인 요양이 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긴 입원기간이 싫지만, 일반적인 정신병원으로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게다가 용인정신병원에는 환자 스펙트럼이 훨씬 다양했다. 이래 저래 고대 정신과 병동은 진짜로 형편없는 병동이다. 가격까지 고려한다면 정말 사기단체나 다름없다. 나는 이 병원에서 특히 병원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 의사의 환자들은 일관된 특징이 있는데, 대체로 증상이 경미해서 의사의 조언을 잘 따르며 그래서 꾸준한 치료를 받아오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면, 정신과 의사로서 편안한 돈벌이가 가능한 환자들인 것처럼 보인다. 가식과 꼼수를 잘 포장해서 사회적 명망과 부를 쌓아가는 부류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다른 병원에서 부원장으로 일한다고 한다. 이 병원에서도 나는 여전히 상사병에 걸린 편집증적 정신분열환자이다. 요즘은 조현병이라고 한다나. 그래서 나는 지금도 정신병원을 정기방문해야하는 정부공식등록 정신장애 3급 장애자이다. 나는 아직도 내 병명과 증상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타당한 판단 근거를 듣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껏 겪어온 말도 안 되는 불법행위와 패륜행위가 버젓이 30년 넘게 지속되는 것은 아무래도 정권차원의 비호와 압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또 해외에서 겪은 일들도 잘 생각해보면 국내 정권의 법 테두리 밖에 내동댕이쳐진 내가 겪기엔 도가 지나치다. 뭔가 이상한 점이 많아서 지금 이 상황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하면, 나도 망하고 그런 불법적인 인권유린상황은 한국을 포함하여 전세계적인 일상 다반사가 될 것이다. 한국의 역대대통령중에 현재 살아있는 이는 전두환씨, 노태우씨가 있고, 김영삼씨 사망, 요즘 거리에 ‘평화의 꽃’이라고 플래카드에 적힌 김대중씨도 사망, 노무현씨 자살, 이명박씨, 박근혜씨 수감, 현 대통령인 문재인씨가 있다. 내가 이런 불법적인 상황에 빠진 이후에 보아온 역대대통령들이다. 정치 사회적인 비판을 하려면, 한참 더 쓸 이야기가 많지만 여기서는 생략을 하고, 아무래도 일관성 있는 마무리들은 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미숙한 정치인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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