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I got quitting high school

3. the mental hospital, University and the graduation


매우 비전문가 같은 상담사와도 별로 소득이 없이, 엄마는 계속 안달복달하고, 서로 마찰하다가, 정신과 면담까지 하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밤에 거실에 나와서 물건을 마구 부순 사건 때문이다. 낮에 감시하며 참견하는 것도 참기 힘든데 잠들기 전에도 계속 참견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장치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 이후에 내가 겪은 많은 일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당시 정신과 진료 최고 권위자라고 아빠 친구가 추천해준 이병윤 과장을 만나기 위해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 한밤중에 응급방문하여, 이병윤 과장이 부재중이라서, 그 다음날 이민수 과장에게 약 1~2시간 동안 초진 후, 정신과 입원 판정 받고 입원하게 되었다. 정신과입원을 위한 상담 이후의 상담내용은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더 이상 내게 대한 질문도 없고, 그냥 정신과 약 먹고, 부작용이 어떤가 정도의 이야기들이 다이다. 그러는 동안 이민수 과장의 추태를 보며, 레지던트들의 잘못된 행동과 말 등을 겪으며 그렇게 정신병 환자로서의 낙인이 선명하게 찍히가기 시작했다. 입원의 반복되어 갈수록, 이 민수 과장은 자신이 오진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내게서 반드시 문제요소를 만들어야 겠다는 듯이 굴었다. 담당 레지던트들은 그런 이민수의 의지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아마도 대학병원이라 더 그런 것 같다. 후에, 내가 상담했던 레지던트들이 대학병원에서 의대교수 등 한자리씩들 차지하면서 확고한 이민수 체계가 잡혀가는 것처럼 보였다. 직접 관련한 내용에 대해서는 상담하지 않았다. 내 히스토리에 대해서도, 자기들이 판정내린 정신병 증상 관련해서도 묻지 않았다. 대신, 나는 집과 학교를 다니면서 계속 여러 사람들과 마찰을 빚었고, 담당의사들은 그 문제들에 대해서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식이었다. 내가 그 점에 대해서 그들에게 지적하면, 그들은 점점 비난의 대상을 바꿔나가면서, 재판관 행세를 하려 들었다. 본인들의 잘못을 내게 투사하며, 본인들의 책임 회피를 위해 나를 비난하다가 우리 가족을 비난하기를 번갈아 했다. 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아빠는 편집증 환자 수준이며, 나와 계속 마찰하고 있는 엄마에 대해서는 묵묵, 내 형제들은 굉장히 경쟁적이며 ..., 뭐, 그래서 집안 내력이라는 식인 것이다. 이래 저래 자신들은 아무 잘못 없는 책임회피의 일관이며, 엄마와의 마찰이 계속되는 걸 방관하며 조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행위는 투약 이외에 정신병적인 처치와 거의 상관이 없음에도 내 병명에 증상만 계속 추가해 갔다. 아마도 일처리가 쉬웠으리라 생각된다. 가만보면, 자신들은 정신과 의사들임에도 구체적인 인간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힘든 모양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거의 없이 피해망상, 과대망상, 환청, 색정망상, 관계망상 등의 용어로 대체해 이야기하는 걸 선호한다. 언어 사용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의 감상이나 남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사람들인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 고대 의대를 거쳐 대학부속병원에서 근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하고 공부에 매달렸을지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렇다고 하면 최소한 정신과를 선택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다. 신분상승의지와 경쟁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면 정말로 정신과의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 대학부속병원이라서 빈약하기 짝이 없는 시설과 서비스에도 어마어마한 병원비를 매번 지불해야 했고, 매번 신약을 투여 하려고 했기 때문에 약값도 고가이지만, 갖가지 부작용을 다 겪어야 했었다. 내가 겪은 부작용에 대해 일반사람들에게 아무리 잘 설명해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하긴 정신과 의사들도 그 부작용에는 이런 약을 써야한다는 건 알아도, 그 부작용 때문에 얼마나 힘들까하는 건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때로는 '생명 포기 각서'를 부모님으로부터 받고 시험적 투약도 했었다. 내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제약사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기회가 된다. 공짜 홍보 기회이자 공짜 인간대상 실험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글로 재판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면 그 제약사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거대 제약사라서 돈에만 반응할 것이 아니고 사회적인 책임에도 크게 반응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의사들의 서양의학에 대한 맹종을 보고 또 한번 실망했다. 최신 서양의학에 의하면 사람이란 화학물질에 의한 과정일 뿐이라서, 약으로 모든 정신활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거였다. 약 용량의 정확한 계량으로 타인의 정신조절의 강도를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식이다. 이런 일련의 국가적 망신 사태가 대학법인차원의 지지 없이 진행될 수는 없어 보인다. 거기에 아무리 한국에서 잘 나가는 대학이라해도 이런 일을 꿋꿋이 20년 넘게 해내려면, 정부 지원이 없으면 무리일 것이다. 자료가 확보되는 대로 나는 그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이다. 대학입시를 두번 놓치고 건국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내가 처음 치르기로 되어 있던 대학입시는 정신병원 때문에 치를 수가 없었지만, 그 시험에는 수학 과목에서 내가 배우지 않고 자퇴했던 내용이 30% 이상 출제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미 한국이라는 국가시스템에 신물이 났기 때문에, 약속받은대로 유학가기를 희망했지만, 내가 대학졸업장이 없으면 학력이 중졸이 된다고 설득하며 반대하는 바람에 울며겨자먹기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처음 입학해서는 수업받기가 거북했다. 내가 고교 2학년 새로 시작할 때랑 다른 게 별로 없지 않은가. 문제만 커지고 관련된 사람 수만 더 늘어났을 뿐. 그 말은 ,나를 소외시킨 채, 참견할 사람만 더 늘었다는 뜻과 비슷하다. 그래도 처음에는 교수님들이 매우 배려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짜증스럽긴 마찬가지지만, 별 수가 없기 때문에, 또 늦게 진학해서 동급생들과 나이차가 두 살이나 나서, 호칭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특히나 연배를 중시하는 동양적 문화에서 나도 어린애들한테 반말 듣기가 싫고, 동급생들도 함부로 반말하기 힘들어했다. 한술 더 떠 선배들까지 나서서 이래야하고 저래야 자기들이 편안하다는 둥, 압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늦게 입학했다는 이유로 동급생들과 천편일률로 반말을 터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나보다 일찍 입학했다는 이유로 선배들을 언니, 오빠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의 입학시스템에 밀려서 나와 같은 나이에 입학한 동갑내기들과는 그래도 좀 말하기가 편했다. 그러다가 복학생도 좀 생기고 하면서, 웃기지도 않게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 내용은 나도 잘 설명하기가 힘들다. 아무도 나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한 적이 없는데, 군대 갔다가 복학한 한 남학생이 동급생 거의 전부를 자기 부하처럼 부리며 나를 왕따로 만들고 있었다. 하도 답답한 내가 그 복학생을 카페로 불러서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본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가뜩이나 정신병원 다니며 집에서도 마찰이 심해서 한국에서 빨리 떠나고 싶은데다 이 복학생은 처음엔 좀 친한듯 하다가 이렇게 돌변해버리니 나로서는 정말 하루에도 몇번씩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은 생활이 된 것이다. 이 대학교에서의 문제에 대해서 고대 정신과 의사들의 주장은 나의 피해망상이며, 과대망상에, 색정망상이라는 것이다. 너의 편집증 때문에 그 문제에 더 집착하는 것이니, 온통 내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정신과 의사들은 나와 의사소통할 때 꼭 정신과 환자처럼 한다. 나한테 말로 하는 내용과 나한테 진짜 요구하는 내용에 많은 차이를 담고 있다. 거의 모든 면에서 그렇다. 효과가 의심스러운 약 이외에 내게 주는 조언이라고는 ‘혼자 피해망상으로 끙끙 앓지 말고, 타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서 물어보라’는 것이다. 그럼 오해가 풀릴거라는 주장인데, 사실 나는 학교에서 주변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없다. 나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내 얘기를 수군거리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학교에서 내가 마주치는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겁에 질려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왕따를 당하고 있기는 해도 나랑 굉장히 사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일 뿐더러, 아이스브레이킹이 너무 어려워서 쭈뼛거리다가 저만치 물러난 것처럼 보인다. 아무도 인정하고 내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용감하게 자기를 드러내고 친하게 지내고자 하는 욕구를 드러내지 못하는 거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상대방이 거부당했다고까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건 고등학교 때 자퇴까지 하게 된 경위와 비슷하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거의 매년 입원해서 말도 안되는 주장과 대우를 받으며 약에 취해 힘겹게 생활하다가, 입원기간이 길어져 휴학하게 되었다. 엄마와는 특히 심한 마찰로 주변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을 한몸에 다 받아야 했고, 집에서는 사이가 좋았던 동생과도 점점 멀어졌고, 오빠는 원래 별로 친근한 사이가 아니었으며, 여러 정황이 계모라고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부모님은 방학때마다, 또 휴학기간에 해외에 여행다니며 어학연수도 하게 해주셨다. 해외에서 좀 지내다 오면 상태가 굉장히 좋아진다고 여기셨기 때문이다. 복학 후, 독어 교양수업에 회화반이 개설되어 수강했다. 대학 입학 초기부터 유학하겠다고 밝히고 다니고 있었는데, 건대 물리학과에는 유독 독일유학출신이 많았다. 그리고 내게도 독일유학을 권해서 그러기로 마음먹고 1학년 때부터 독일어를 공부했는데, 영어랑 달리 학원도 별로 없어서 종로까지 독어 배우러 다녔고, 정말 어려웠다. 회화는 더 어려워서 투자시간 대비 좌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교수님은 독어를 가르치러 한국에 와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나의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재빨리 나꿔채야 할 것 같은, 하지만 이래 저래 지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고대 정신과 의사들은 이 문제에 대해 ‘상사병’이라고 진단했다. 내 망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로 수도 없이 반복되는 입원 사유는 두 가지다. 엄마를 계모라 하는 것과 독일 남자에 대한 상사병. 고대 병원에는 방문하면 거의 자동으로 입원이 된다. 상담도 거치지 않고 거의 악의적으로 가두는 느낌이 된다. 당시 유행하기 시작하던 유전자 검사를 해보자고 해도 병원측은 할 필요가 없다고 극구 거절. 병원 측에서 먼저 요양시설 같은 데서 지내보면 어떻겠나고 제안해서 그러겠다고 했더니 또 거절. 그러다가 약 3년 만에 자퇴했다가 재입학, 같은과에서는 여전히 서먹, 예전의 그 복학생도 자퇴했다는 소식을 예전에 연배가 같아서 좀 친하게 지내던 남학생에게서 들었는데, 걔 말이 내가 자퇴하기 전에 자퇴했다나… 마치 내가 자퇴해서 그 복학생이 자퇴한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이 문제에 대한 고대 정신과의 진단은 ‘색정망상’이다. 그 용어의 뜻을 물어보니, 세상 남자들이 다 본인을 사랑한다고 느끼는 망상이라나… 내가 후에 다른 의사에게서 들은 색정망상은 그게 아니던데. 대학 생활도 고교때와 별다를 것 없이, 교수들에게도 미움받아 고지사항을 놓쳐서 시험을 못치게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7년 걸려서 겨우 겨우 학사학위를 받았다. 유학을 가기 위해 정말 애썼는데, 추천장도 써주는 걸 거부했다. 물리학은, 나로서는 좀 쉽게 공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선택했고, 입학 후에는 물리학의 내용이 내가 처한 문제해결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대학에서 새로이 습득한 물리에 관한 지식은 없었다. 그건 결정적으로 정신과 약 때문이다. 고대 정신과 의사들은 약을 먹으면서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특히 나같이 머리가 좋은 사람은 확실히 두뇌기능에 막대한 지장을 받는다는 걸 느낄 수 밖에 없다. 또 그들이 영양제처럼 생각하고 먹으라는 약은 그 기능이 전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신과 약은 거의 모든 정신기능과 신체기능에 마비를 가져다 준다. 결과적으로 비만해지고 삭막한 정서가 된다. 풀어서 말하면,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영양상태가 엉망이 되면서 이도 약해지고 피부도 나빠지고 인상도 정신과 특유의 경직된, 정신과에서는 패턴이라 할 만한 인상이 되며 운동기능도 떨어지고 이상식욕이 생기면서 비만과 당뇨가 온다. 정서적으로는 삭막해져 슬퍼도 울기 힘들고 웃을 일에도 웃기 힘들고 말도 어눌해지고 하기 싫어지며 만사 귀찮고 항상 처지고 졸린 느낌에 일상생활이 매우 힘겨워지므로 타인과의 교제는 거의 불가능하다. 휴학, 자퇴와 재입학을 거치면서 7년만에 졸업하니, 부모님이 갖가지 이유로 유학 반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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